검증될 수 없는 가설

한 가설이 있다. 그런데 그 가설은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고, 이것을 검증할 수 있을만한 현상들은 모두 관측된 적이 없다. 또한 이 가설은 확실히 체계가 잡혀있지도 않다. 그러면 그 가설이 '틀리다'고 가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물론, 이 가설은 틀리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가설을 인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이 가설의 증거는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3초 전에 세상을 창조하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은 조작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하자. 그 사람의 주장은 틀렸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리는 쉽게 그가 미쳤거나 거짓말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가설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으며 어떤 현상을 예측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가설이 틀렸다고 생각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이번에는 유니콘을 생각해보자. '유니콘'이라는 것은 한번도 관측된 적도 없고 증명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경험이 유니콘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라는 가설은 어떨까? 물론 이 가설도 맞거나 틀리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가설이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고 이것을 검증할 수 있을 만한 현상들은 한번도 관측된 적이 없다. 귀납적 방법을 적용해보면, 신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가정해도 별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무신론는 신이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검증할 수 없는 가설을 '거부'하는 것이다.[1. 이런 이유로 '무신론자'라는 이름을 '자유사상가(freethinker)'라는 명칭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사실 신이 있다고 판명되는 즉시 신을 믿을 사람이 무신론자이다. 우리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고 검증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는 불가지론자와 어느정도 의견이 같다. 다만 다른 점은 무신론자가 조금 더 적극적이라는 것일 뿐이다.

여러 생각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검증될 수 없는 가설은 틀렸다고 가정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댓글

  1. 스트링님의 논리는 이해가 갑니다만
    제 생각은, 옳다/그르다의 두 분류로 나누는 것은 지나친 흑백 논리처럼 느껴집니다. 차라리 '보류'라는 새 카테고리를 하나 만드는 것이 이론의 증명과정을 살펴봄에 있어서 더욱 매끄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을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자칫 잘못된 관념을 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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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물론 보류라는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카테고리에는 검증과 반증이 원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아직은 확실히 규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제 말은 검증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가설을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잠정적으로 틀렸다고 봐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런 가설을 틀렸다고 확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가설을 틀렸다고 보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니콘이 없다고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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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검증될 수 없는 가설...

    검증될 수 없는 가설은 틀렸다고 가정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생각해보자. 위의 명제는 검증될 수 없는 명제인가? 아닌가? 만약 검증될 수 있는 명제라면 우리는 그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있다. 그러면 '신은 존재한다.'가 검증될 수 없는 가설이라고 하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라면 위 가설은 검증될 수 있는 가설이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검증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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